600년 남대문이 허망하게 불 타 버렸다. 그것도 우리 시대에 말이다. 그 안타까운 마음이야 어느 사람에겐들 다르랴. 그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불씨도 채 사그라지지 않은 그곳에 벌써 복원의 목소리가 높다. 넉넉잡아 2-3년이면 지을 수 있단다.

역시 대한민국이다. 뭐든 작심만 하면 얼렁뚝딱이다. 못 하는 게 없다. 경부고속도로도 세계 최단기간에 만들어낸 나라이다. 청계천도 후닥닥 복개했다 후닥닥 복원(?)한 나라이다. 그러니 까짓것 2년도 길다. 한 1년이면 끝날 것 같다. 밤낮으로 잠도 안 자고 밀어붙이면 못 할 것이 뭐 있겠나. 오늘 당장 불도저를 끌고 와 불탄 자리를 확 밀어버리고 새로 지으면 된다. 목재도 미국산으로 수입하고.

그런데 우리의 바로 그 조급한 마음에 우리의 정신적 빈곤이 숨어 있다. 이젠 한 박자 늦추어 심호흡을 할 때도 되었는데 뭐가 그리 급한지 우리는 여전히 거친 숨을 할딱거린다. 그리고 그런 조급한 마음에 우리는 위정자들이 무엇이든 껍데기만 번지르르하게 해놓으면 그냥 숨넘어갈 듯이 찬사를 남발한다. 속은 곪아터지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경부고속도로가 그랬고, 청계천이 그랬다. 경부고속도로는 허구헌날 땜질을 하느라 쉴 틈이 없는 사이 땜질비용이 건설비용을 까먹은 지 오래되었고, 청계천은 연간 유지 보수비가 70억 이상 드는 물먹는 하마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추진력’을 지도자의 최고의 덕목으로 숭상한다. 그런데 그 ‘추진력’이란 ‘파괴’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우리의 산하를 한번 둘러보라. 어디 성한 데가 한 곳이라도 있는가? 우리에겐 산이든 들이든 강이든 갯벌이든 뭐든 닥치는 대로 밀어버리고 부수는 것이 여전히 위정자의 미덕이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말 앞에 문화나 환경은 여전히 사치이다. 도대체 얼마나 먹고 마셔야 성이 찰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와 ‘개발’에 중독되어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은 아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언제 우리가 남대문을 한 번이라도 차근차근 바라본 적이 있었나? 그저 국보1호라고 앵무새처럼 외우고 다닌 것 외에 말이다. 여태껏 남대문은 그저 현대 서울의 한 복판에서 도로와 고층빌딩에 포위된 채 길 잃은 이방인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었다. 그러다 이번 화재로 우리는 화닥닥 놀라 새삼스레 호들갑을 떤다. 그런데 그 호들갑의 결론은 간단하다. ‘까짓것 새로 만들면 되지’ 이다.

경주를 보라. 문화와 역사에 무지한 우리가 만들어놓은 도시이다. 그곳에는 현대와 과거의 공존이나 조화도 없다. 여기저기 콘크리트로 지어놓은 값싼 ‘문화’가 천년의 숨결을 끊어 버리고 유적은 현대의 도시에 검버섯처럼 여기저기 돋아있다. 거기에 어디 과거는 고사하고 우리 시대의 정신이 있으며, 거기에 어디 우리 시대의 창조력이 있는가? 경주는 한 마디로 조잡한 모조품의 도시이다.

복원은 단순한 모조품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참된 ‘북원’은 그 시대의 기술과 창조력의 집약이다. 그렇지 않은 복원은 싸구려 모조품을 만드는 행위와 다름이 없다. 우리가 남대문을 제대로 복원하려면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그런 긴 인내와 정밀성이 있을 때만 ‘새로운’ 남대문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국민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후닥닥 복원한다면 광화문처럼 오래 못 가 헐어내야 하는 비운을 맞을 수도 있다.

우리의 위정자들에게 긴 호흡을 요구하는 것은 아직 사치인줄 안다. 청계천도 2년 만에 뚝딱 복원했다. 그것도 시민들의 눈에 잘 띄는 하류만 말이다. 그리고 그 복원의 과정에서 문화라는 개념은 애초에 없었고 유적은 철저하게 망실되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주도한 당시의 이명박 서울시장은 그 공으로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거머쥐었다. 그런 그는 지금 경부 운하도 3년 만에 해치우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아마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면 ‘국민의 허전한 마음’을 인질로 삼아 부리나케 남대문 복원에 착수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능력으로 보아 복원하는데 길어야 2년이면 족할 것이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토목공사이다. 청계천도 토목공사이고, 남대문 개방도 토목공사이고, 경부운하도 토목공사이다. 그러니 남대문 복원도 토목공사가 아니겠는가? 지금으로선 그에게 토목공사 이상의 ‘문화’를 요구한다면 사치일 듯하다.

아마 2-3년 후면 우리는 요란한 남대문 복원식을 볼지도 모르겠다. 남대문의 소실은 이명박에게는 뜻하지 않게 넝쿨째 굴러온 호박이나 다름없다. 청계천 복원, 경부운하 건설과 더불어 또 하나 그의 탁월한 ‘추진력’을 과시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말이다. 그런 횡재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토목공사에 이골이 난 그가 그 기회를 쉽게 포기하겠는가?

물론 그 ‘추진력’이 남긴 후유증은 그의 몫이 아니라 어느 운 나쁜 후세의 다른 대통령의 몫이 될 것이다. 그는 남대문 복원과 경부운하 건설의 치적을 끌어안고 휘파람을 불며 청와대를 떠날 터이니 말이다. 그리고 오로지 국민의 마음속에 ‘추진력’있는 대통령으로만 기억될 터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박정희를 그리워하듯이 그를 그리워할 테니 말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국민의 망각과 기억의 메커니즘을 꿰뚫고 있다.

그러나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남대문은 도로와 고층빌딩에 포위되고 그 밑에 지하철이 통과하면서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런 만신창이 몸이나마 근근이 유지하다 이제 그마저 다 타버렸다. 남대문의 소실은 이 시대 우리에 대한 고발이다. 우린 남대문의 소실을 그렇게 읽어야 한다. 이기심과 탐욕에 젖은 우리의 마음이, 문화에 무지한 우리의 가난한 마음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방화를 낳았다.

남대문의 소실은 우리가 잠시나마 허둥대는 걸음을 멈추고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관조할 기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번에도 조급한 마음에, 정치가들의 명예욕에 휘둘려 남대문을 졸속으로 복원한다면 후세에 ‘대한민국 시대’는 너무나 부끄럽지 않겠나? 남대문 복원 이명박을 넘어서야 한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커다란 꿀밤나무